11월호를 보내고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연말에 무언가를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지만 적당한 계획은 있었어요.
평소처럼 친구들과 모여서 맛있는 걸 먹고 편지를 교환해야지, 겨울과 잘 어울리는 영화들을 읽어야지...
그러나 국회로 가는 헬기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상을 침범당한 후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습니다.
여의도는 뼈가 에일 정도로 추웠고 광화문에서는 쉴 새 없이 울었으나 한 번도 외로운 적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앞, 뒤, 옆의 사람들이 함께 같은 문제에 투쟁하는 동지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탄핵이 가결되고 나서부터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남은 2024년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독감이거나 코로나였을지도 모르죠... 마스크 잘 쓰고 다녔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목소리가 실종되었지만 남태령의 새벽 자리도 지켰습니다.
사실 저는 그날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너무 아팠고 동료시민들이 저의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 믿었거든요. 실제로 그랬고요. 전기장판에 누워 등을 굽고 있을 때 남태령으로 사람들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봉준투쟁단이 함께하는 트랙터 투쟁을 경찰이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노래를 부르던 여의도와 달리 남태령 현장은 경찰과 직접 대치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광화문 집회를 끝낸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있다기에 안심하고 다시 전기장판 속으로 들어갔는데... 새벽이 되자 사당 IC까지 빠진 경찰이 앞뒤로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빠져서 인원이 적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더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어요.
남태령? 거기가 어디야.
사당 IC?... 거긴 가까운데? 하고 검색해 보니 차로 대략 20분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가까운 것도 알았고 사람들이 적어졌기에 한 사람의 머릿수가 절실하다는 것도 알았고
이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가는 수밖에는 없는데.
정말정말 추웠어요.
밖은 정말 추웠고 저는 열이 나는 환자였습니다......
솔직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가 주지 않을까, 여의도에서 그렇게 열심히 투쟁했는데 이 정도는 스스로와 타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틀어두고 있던 라이브 방송 화면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빠지고 없었어요... 이대로 더 빠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한쪽 팔이 멱살을 잡아 뜯으며 저를 일으켰습니다........ 가기 싫어하는 몸을 일으킬 때 쓰는 저의 수법입니다.
새벽 2시 30분경, 택시를 타고 달려가는데 기사님이 한밤중의 괴담을 마주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지금... 가는 데가... 그냥 도로 한 중간인데.........요? 맞아요.....?
저야말로 한밤중의 괴담을 마주한 심정이었습니다.
이 추운 날에 사람들을 길거리로 몰아 투쟁을 하게 하다니.
경찰 버스 앞에 세워달라고 하자 기사님이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이거 뭐 때문에 가는 거예요?
지금 농민들 트랙터를 경찰들이 막아서서 함께 투쟁하러 가요.
시비 걸릴까 조용히 있다 내릴 때가 되어서 말하자 기사님은 결제를 취소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며 내리자 몸 조심하라는 말이 세네번쯤... 택시문 사이로 흘러나왔습니다. 사당 IC에서 남태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인도를 나누어 한쪽에는 경찰이 서 있고 한쪽으로는 남태령으로 가는 시민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발을 한쪽만 삐끗해도 수방사 아래 위치한 어두운 도로에서 얻어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놀고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었는데도요. 그날 새벽에 마주한 모습은 경찰의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동료시민들이 보낸 배달음식이 쌓여 있었습니다. 두 손에 바리바리 챙겨 앞대열에 도착하자마자 전봉준투쟁단 옷을 입은 분들이 저를 반겨주었어요.
활짝 웃으면서요.
길을 올라오면서 보았던 무장한 경찰들의 모습보다 웃는 동료 시민들의 얼굴이 더 무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서 있는 이 광장에 나오기를 잘했다.
오늘 나오지 않았으면 나는 먼 훗날의 나를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의도에 나가서 신문사 인터뷰를 할 때 왜 여기에 나왔냐는 말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거든요.
이기려고 나온 게 아니라 이 자리에 나오는 게 옳다고 믿기 때문이라고요.
이기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언젠가 이길 쪽을 선택할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그냥 옳다고 믿는 쪽에 적극적으로 서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장 앞대열에 있었습니다. 혹여나 경찰과 농민들이 대치하면 중간의 쿠션 시민이 되려고...
그 정도는 돼야 적극적이라고 주장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